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부정적 평가/정치 (문단 편집) === [[4대 의혹 사건]] === [[전두환 정부]]를 능가하는 비리가 쏟아진 사건이다. [[새나라자동차 사건]], [[워커힐 사건]], [[증권파동]](주가조작), [[빠찡코]] 사건을 묶어서 중앙정보부 '''[[4대 의혹 사건]]'''으로 부른다. 군사반란을 일으킨 직후에 민심을 잡고, 반란 명분을 굳히는 집권 초기부터 당시 기준으로 수백억 원대 부정부패가 터졌다. 지금으로 치면 조 단위가 훨씬 넘는 부정부패가 터졌다는 뜻이다. 전두환 정부 때 부정축재의 당사자로 지목되어 정계에서 은퇴한 [[이후락]]은 "떡(정치자금)을 만지다보면 떡고물(부스러기 돈)이 묻는 것 아니냐"고 해명하여 박정희 정부의 부정부패 실태를 폭로했다. 이 4대 의혹 사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'''[[워커힐 사건]]'''이다. 불법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[[박정희]] 대통령은 정치 공작을 위한 정치 자금 마련이 시급해지자, 정치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무의미한 건설 사업을 벌여 공사비를 착복할 계획을 짠다. 박정희 정권은 [[주한미군]]이 휴가 때가 되면 휴양지를 찾아 [[일본]]으로 여행하는 것에 주목했다. 당시 한국에는 이렇다할 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미군들은 [[한국]]에 남아 돈을 쓰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달러를 소비하였다. 미군은 미군의 나름대로 비용이 많이 들었고, [[한국 정부]]도 정부 나름대로 미군의 달러가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.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의 명분을 내세워 윤락시설을 구상한다. 윤락시설의 이름은 [[한국군]] [[운전병]]의 실수로 죽은 미 8군 사령관 [[월튼 워커]] 중장의 이름을 따서 [[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]]로 정했다. 1962년 봄, 군사정권의 워커힐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[[일본]]의 유력 주간지들은 일제히 “[[한국]]의 군사정권이 미군 장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술과 여자와 도박판 위주의 위락시설을 짓고 있다”고 보도하였다. [[미국]] 언론도 같은 해 10월, “이 시설은 매춘굴, 카지노, 미인 호스티스 등을 갖추고 있다”고 보도했으며, 이에 미국 부인단체가 유엔군 사령부와 [[한국 정부]]에 강력 항의하기도 했다. 그러나 워커힐은 원래 목적인 미군 장병 유치엔 실패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며, 그 대신 [[박정희]] 대통령이 애용한다. 당시 [[동아일보]]는 "워커힐이라는 것이 뭔데 그 수지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 국민 도덕 의식의 마비도 불사하겠다는 것인가. 국민의 도덕 의식을 마비시켜야 이루어지는 그런 근대화나 건설을 국민은 아무도 바라고 있지 않다.", "우리가 세계에서 첫째가는 [[후진국]]이라 해도 위정자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도덕의식을 수호하는 것"이란 논평을 내놓았고, [[뉴욕타임즈]] 역시 "군사정권의 시대착오적인 계산으로 애꿎은 국고만 소모됐다"는 혹평을 내놓았다. 이렇게 시작부터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었던 워커힐은 1961년 9월부터 착공에 들어가 11개월 만인 62년 12월 26일 완공되었으며, 당초 계획대로 [[중앙정보부]]는 건설비 명목으로 책정한 5억 3천 600만 원 중 2억 5천여만 원(현재가 약 10조 원)을 착복했다.[[http://db.history.go.kr/id/tcct_1963_03_06_0020|#]] 참고로 1963년도 한 해 국가 예산이 768억 원이었다. '''윤락업소를 짓는데 연간 국가 예산의 0.6%인 5억 원의 거액을 투입'''한 것인데,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350조[* 2014년도 국가 예산]의 0.6%인 20조 원을 투입한 셈이다.[* [[https://books.google.co.kr/books?id=UXvhBAAAQBAJ&pg=PT217&lpg=PT217&dq=%ED%95%9C%EA%B5%AD%EC%9D%98+%EA%B5%B0%EC%82%AC%EC%A0%95%EA%B6%8C%EC%9D%B4+%EB%AF%B8%EA%B5%AD+%EC%9E%A5%EB%B3%91%EC%9D%84+%EB%81%8C%EC%96%B4%EB%93%A4%EC%9D%B4%EA%B8%B0+%EC%9C%84%ED%95%B4+%EC%88%A0%EA%B3%BC+%EC%97%AC%EC%9E%90%EC%99%80+%EB%8F%84%EB%B0%95%ED%8C%90+%EC%9C%84%EC%A3%BC%EC%9D%98+%EC%9C%84%EB%9D%BD%EC%8B%9C%EC%84%A4%EC%9D%84+%EC%A7%93%EA%B3%A0+%EC%9E%88%EB%8B%A4&source=bl&ots=5oXhpgR9Ks&sig=T2Na1i7ThEHWHZsB3O3eKzcG7jI&hl=ko&sa=X&ved=0ahUKEwi47ZbN4sTMAhXBFZQKHd_JBOkQ6AEIGzAA#v=onepage&q=%ED%95%9C%EA%B5%AD%EC%9D%98%20%EA%B5%B0%EC%82%AC%EC%A0%95%EA%B6%8C%EC%9D%B4%20%EB%AF%B8%EA%B5%AD%20%EC%9E%A5%EB%B3%91%EC%9D%84%20%EB%81%8C%EC%96%B4%EB%93%A4%EC%9D%B4%EA%B8%B0%20%EC%9C%84%ED%95%B4%20%EC%88%A0%EA%B3%BC%20%EC%97%AC%EC%9E%90%EC%99%80%20%EB%8F%84%EB%B0%95%ED%8C%90%20%EC%9C%84%EC%A3%BC%EC%9D%98%20%EC%9C%84%EB%9D%BD%EC%8B%9C%EC%84%A4%EC%9D%84%20%EC%A7%93%EA%B3%A0%20%EC%9E%88%EB%8B%A4&f=false|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: 4·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]] ] [[증권파동]](주가조작)의 내막도 다음과 같다. 중앙정보부는 한전주식을 허위거래하여 주가상승을 유도하여 액면가 45전 주식이 54원으로 만든 후에 시세차익을 얻어 당시 국가예산의 10%에 가까운 20억 환을 챙긴다. 그에 반해 일반투자자는 투자실패로 자살에 이를 정도로 집안이 망하는 사람이 속출했다. 이것을 기획한 [[김종필]]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'투기꾼들이 모이는 증권시장을 통해 공작자금을 마련하는 과거 [[제2차 세계대전]] 때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조해서 정치자금을 조달했다.'는 것인데 나중에 [[김형욱]]에 의해 폭로되기를 박정희에게 일부 상납되고 민주공화당 창당자금, [[야당]] 교란 등의 공작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. [* [[조갑제]] :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5권, 김형욱 회고록] 이 사건으로 한국의 주식시장은 10년 정도가 정상화되지 못해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학자들이 평가한다. [[http://www.sedaily.com/NewsView/1KWIYNYGQ9|#]][[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14389.html|#2]][[http://pressian.com/news/article.html?no=119244|#3]][[http://www.archives.go.kr/next/search/listSubjectDescription.do?id=003541|#4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